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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워홀 팩토리전 관람기

미래전략본부 2020. 9. 9. 20:23

앤디워홀 팩토리전 관람기

<앤디 워홀 팩토리전> 관람기

  순회강연에 자신을 닮은 사람을 내보내고, 비타민을 먹고 캔버스에 오줌을 싸서 생기는 생화학적 효과를 작품에 활 요하고, 프랑스에서 찍은 사진을 모아 ‘아메리카’라는 제목의 사진집을 묶어내고, 앰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촬영한 8시간짜리 영화를 만들고, 소설이라면서 다른 사람과의 전화 통화를 받아 적은 책을 출간하고, 자신이 쓰던 가발 중 몇 개를 액자에 담아 고이 보관하고..... 팝아트의 전설적인 작가 앤디 워홀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앤디워홀 팩토리전>을 보기 전에 관련 서적 몇 권을 들춰보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팩토리라는 말이 영 낯설었기 때문이다. 팩토리(factory)는 앤디 워홀의 작업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조수와 함께 실크 스크린 작업을 하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마약을 하기도 하고, 처음 방문하는 사람을 필름이 다 될 때까지 카메라 앞에 앉혀두기도 하는 공간이었다. 팝아트적이고 사이키델릭 한 분위기의 살롱인 셈이다.󰡒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라는 말과 함께, 팩토리는 앤디 워홀의 작품세계를 상징적으로 압축하고 있는 공간이자 용어이다. 대중매체와 대량생산과 관련된 앤디 워홀적 은유가, 다름 아닌 기계와 공장인 것이다.

 

 앤디워홀은 대중매체와 대량생산이라는 현대적 삶의 조건을 예술의 지평과 융합시킨 작가이다. 피카소가 서구에서 대중매체의 각광을 받은 최초의 화가이고 대중매체를 이용해 창작의 자유를 지키고자 한 예술가였다면, 앤디 워홀은 스스로 미디어의 일부가 되고자 했고 공장의 생산성을 예술의 영역과 융합하고자 한 예술가였다. 대중매체가 쏟아내는 이미지를 활용하고 대중매체에 스스로를 노출시킴으로써, 그는 예술작품의 마케팅 차원을 예술창작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또한 예술은 장인적인 기교가 요구되는 수공업적인 생산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에서 벗어나서, 공장의 대량생산과 흡사한 산업적인 복제의 차원으로 예술의 방법론을 바꾸어 놓았다. 그 지점에서 예술은 개인적인 작업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가 되며, 예술가의 정체성은 전략적이면서 모순적으로 구성된 브랜드를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오늘날 자리를 잡은 아트 비즈니스의 원초적인 모습을 앤디 워홀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장과 기계의 이미지 때문일까. 전시를 둘러보면서 앤디워홀이 점점 사이보그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그는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작업에 도입했다. 1962년에 실크스크린을 처음 사용한 이래로 그는 팩토리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들을 기록했고 녹음했고 촬영했다. 실크스크린, 녹음기, 촬영기, 사진기 등은 그가 없는 곳에서 예술-작업을 하는 앤디 워홀의 또 다른 몸이었다. 사이보그를 유기적 생물과 기계 장치의 결합체라고 한다면, 앤디 워홀은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자신의 상상적인 육체로 생각한 사이보그였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용된 맥락은 다르지만, 사이보그와 관련한 다나 해러웨이의 말은 앤디 워홀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사이보그는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교배이며, 사회적 실재임과 동시에 허구의 산물이다.󰡓성적, 계층적, 매체적, 양식적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던 그의 예술은, 어쩌면 사이보그의 자기 증식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브릴로 상자, 캠벨 수프, 메릴린 먼로, 마오쩌둥 등을 복제한 작품들을 둘러보는 동안, 플라톤의󰡐국가’에 등장하는 예술론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널리 알려진 대로 플라톤에게 있어 이데아(형상)는 다양한 현상 뒤에 있는 궁극적 실재이자 기원이다. 이데아는 감각을 초월한 것이기에 인간이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인간의 감각이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데아의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모방에 모방이 겹쳐질 수록 이데아에 대한 망각과 변형이 더욱 심화된다. 그렇게 플라톤은 실재에 대한 망각을 막기 위해서 상기(想起)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앤디 워홀의 전략은 무엇일까. 플라톤이 본질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 발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서는 지점, 바로 그 지점에서 앤디워홀은 플라톤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 나간다.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실재에 대한 망각은 가속화되고 이미지의 표면 성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원의 이야기는 이미지들 속에서 파편 또는 흔적의 모습으로 흐릿하게 복제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원은 없어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앤디 워홀이라는 브랜드가 새로운 기원으로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앤디 워홀이라는 기원은 초월적인 기원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앤디 워홀이라는 기원 자체가 기술적 복제와 대중적 확산의 효과이자 산물 때문이다. 앤디 워홀은 현대의 중요한 문화적 기원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문화적 기원으로서 앤디 워홀은 단지 예술적인 새로움 때문이 아니라, 수없이 복제하고 복제되었기 때문에 기원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는 저 멀리 역사의 초월적 지평 위에 고독하게 서 있는 기원이 아니라, 흩뿌려져 있는 기원들이며 지금도 복제되고 있는 기원이 아닐까. 그래서 앤디 워홀을 만나는 동안 왠지 모를 친숙함이 미술 문외한을 따라다녔던 것이 아닐까.

 

앤디워홀의 미술사적 의미 분석

  최근 앤디 워홀의 작품 <메릴린 먼로>가 한국 돈으로 160억 원 정도의 금액으로 평가받으며 거래되었다고 한다. “쓰레기”, “한 미치광이의 광기 어린 노리개”로 폄하되던 앤디 워홀이 도대체 왜 이토록 높게 평가받고 있는가. 도대체 그가 갖고 있는 미술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미술계에서는 첫째 이유로 소비문화를 본질 삼았던 워홀의 팝아트가 작금의 예술 조류 형성에 제일 커다란 영향을 끼친 점을 꼽는다. 리움의 이준 부관장은󰡒우리나라에서 특정 예술가의 전시가 이렇게 겹치는 건 정말 우연의 일치󰡓라면서 󰡒최근 일상 대중문화를 전면적인 소재로 쓰는 네오팝, 포스트 팝이 유행한다는 측면에서 20주기를 맞은 워홀 팝아트가 문화 향유자들의 취향과 공통적으로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작품 자체가 20년 전의 것인데도 요즘 유행하는 미술 조류인 유사 팝 트렌드에 딱 들어맞는다는 역설이다. 살아서도 철저히 돈을 밝히고 가식적인 기행에 탐닉했던 그의 사업가적인 태도는 새로운 아방가르드의 신화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미술을 개념으로 인식한 뒤샹에 이어 소비문화를 미술적 맥락에서 전폭 수용한 그의 업적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전시장용 미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광고, 패션, 아트상품이나 고가 컬렉션 판매에까지 폭넓은 예술 효용성을 보여주는 점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전까지 소수 엘리트만의 고급 놀이로 인식되어오던 순수 미술을 대중들의 눈높이로 맞춰 준 것은 앤디 워홀이 미술사적으로 남긴 또 하나의 커다란 족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셋째로는, ‘대중미술’이라는 개념을 미술사적으로 일정 수준의 반석 위에 올려놓은 점을 들 수 있다. 이전의 미술이 ‘감상 예술’로써의 수동적인 수준의 그쳤다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소비하는 ‘활용 예술’로써 대중미술을 포지셔닝한 점은 앤디 워홀이 이루어낸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광고를 비롯한 영상 분야에서 그의 네오팝적인 스타일과 강렬한 비주얼을 바탕으로 한 대담한 기법들은 그 후 많은 후진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존재에 대한 반증과 이미지의 극적 변화를 통해, 현실 세계의 분위기를 일신, 반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앤디워홀이 미술사적으로 끼친 커다란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앤디 워홀의 광고 사적 의미 분석

  대중사회는 현대사회의 구조적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대중사회는 대중 출현의 사회적 특징으로 자유, 고독, 소외 등을 담고 있으며, 이런 대중사회의 문화적인 양상을 가장 잘 반영한 것이 대중문화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중사회는 시각적인 이미지가 범람하는 정보로 가득 차 있다. 각종 매체와 영상 기기들이 발명되면서, 그리고 그것들이 일상화되면서 가히 '이미지의 홍수'라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광고는 그 대표적인 요소로써, 현대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존재하고 있다.

 

  앤디 워홀은 바로 이 광고 분야에서, 후세 창작자들에게 많은 영감의 근원을 제공했다. 통조림, 콜라병 등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물건들을 대상으로 삼아, 실크스크린이라는 매개체에 무단 복제를 일삼았다. 그것은 “대량생산”으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의 상징적 행위였으며, 그 행위를 통해 사람들은 예술의 자기 복제성의 극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특히, 영상에서의 무한한 재생산 가능성을 사람들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프랑스 사람들이 주로 마시는 미네랄워터와 독일의 대표적인 자동차 브랜드인 폭스바겐의 광고는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항상 상업미술가였다”라고 주장하면서도, 항시 “순수미술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던 앤디 워홀은, 광고적인 이미지의 극대화를 통해 현대적 사회의 비판적 증명을 일관되게 시도해 나갔다.

 

한편, 앤디워홀은 스스로를 상품으로 투영하여, 그 자신이 피사체로 완성된 이미지를 작품으로 만들어 판매하였으며, 재키 여사, 마오쩌둥, 메릴린 먼로, 롤링스톤즈의 믹 재거 등 다양한 유명인들을 작품의 대상으로 활용하여 작품을 제작해왔다. 현대적인 광고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이렇게 유명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에 거의 시초적 발상을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중사회의 주역인 대중들이, 유명인과 사회적 관심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그런 대중의 저변에 깔린 속성을 누구보다 빨리 읽고 이를 작품에 적극 대입한 것은 아주 상업주의적인 발상, 즉 광고적 발상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볼 수 있겠다.

 

  작년 발표된 LG 그룹 PR의 대표적인 광고는 앤디 워홀의 팝아트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융합하여, 새로운 광고적 발상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대중사회와 디지털 문화의 접점에 서있는 현대적 모습을 보여주고, 이를 광고에 적극적으로 대입한 것은 아주 주목할 만한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시대적 트렌드를 선도하는 광고에서 이러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앞으로 진행될 유행의 패러다임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되며, 앤디워홀의 선견 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사례가 아닌가 한다.

 

□ 결 론

  앤디 워홀이 타계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20년간 그의 예술에 대한 평가는 미술사학자들과 평론가들에 따라 분분했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연 개척자로 극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업미술가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예술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미술사를 보는 시각과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갔다.

  그토록 순수 미술가가 되기를 소원했던 그가 극단적인 상업미술가로 변신해가는 과정을 더듬어보면서, 그가 현대 미술계와 광고계에 미친 영향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한때 소수 엘리트들만의 권위에 둘러싸인 ‘성역’을 그는 대량생산과 이미지의 복제라는 미명 하에 일반 대중의 눈높이로 그 지위를 낮췄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현대 사회의 극명한 재확인과 이미지로 대변되는 시대적 환경의 변화를 절감하게 되었다. 또한, 예술의 상업화를 통해, 패션, 광고, 영상 등 다양한 분야와의 크로스오버를 통한 외연 확장도 경험하게 되었다.

  

  과제를 하는 동안, 앤디 워홀의 호오(好惡)를 논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결과론적인 이분법이 아니라, 그가 현대 사회의 문화와 예술에 끼친 영향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자세와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되새겨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삶의 완벽한 복제를 통해, 현대사회의 감추어진 많은 부분들을 투영해 내는 노력들. 어쩌면 앤디워홀의 예술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면서, 이번 과제를 마치고자 한다. 앤디 워홀에 대한 좋은 배움의 기회를 얻게 되어 너무 좋았고, 이런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주신 분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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